원작: 이역의 산장
형식: 기타
유형: -
작성자: 김병한
새로운 노트
2024.08.12 월 오후 9:57 ・ 28분 32초
김병한
오유권 이역의산장 제2장 여인이 나무를 장만하였다.
봉당의 마룻장과 광에 있는 헌 농을 부순 것이다. 힘이 겨우 더라도 웬만하면 나무를 좀 하러 가봤으면 하는 것이나, 여인으로서는 이십리기를 가서 도저히 해 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말이 이 심리지 이심리만 가서는 또 곧 나무를 해올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인가가 가까운 곳은 모조리 근처 마을 사람들이 해에다 떼고 거기서도 다시 오리를 더 나가야 했다.
눈구멍도 눈 구멍이지만 짧은 겨울 해에 왕복 오십리를 걸어서 나무를 해온다는 것은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이전에 자기 남편만 하더라도 아침을 일찍 먹고 급하게 나서도 해가 다 저물어서야 돌아오던 것이었다.
그러고도 겨우 두 끼나 세 끼 때 나무밖에 못 해오던 것이었다.
농짝을 부순 여인은 몹시 서운하했다. 우지끈 우지끈 부서지는 농소리가 마치 어느 몸 한쪽이라도 부서지는 소리 같았다.
비록 헐고 케케 묵었을 망정 밤마다 남편과 함께 닫고 윤을 내던 농인 것이었다.
여인은 불현듯 노인을 도우는 것이 뉘우쳐졌다. 당신의 밥까지 짓노라고 나무가 얼마나 더 드는지 아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데갈데 없는 노인에게 차마 모진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이번에 부순 나무로서는 한 20알 남짓 될 수 있다는 것과 그 뒤에는 어찌해야 하느냐는 걱정이 있을 뿐이었다.
이젠 정말 불 뗄 것이라고 늘 반지 하나가 없는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질그릇이 아니면 사기 그릇, 사기 그릇이 아니면 새것만이 횡댕그렁하게 놓여 있었다.
그러고도 오히려 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문과 장롱과 헌 솜이 들어 있는 광주이며 바구니 뿐이었다.
예인이 이날부터 밥을 저녁에 지었다. 아침에 짓던 밥을 저녁에 지은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저녁에 불을 떼서 새끼 밥을 다 지으려는가 보군.
노이는 은밀한 기대가 마음을 채웠다. 아침에 밥을 지을 때보다 방이 워낙 낮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게다 모처럼 저녁까지 다 순밥을 먹은 노인은 오랜만에 밥을 먹은 속 같았다.
비로소 땀이 후터분하게 나고 삭신이 풀리는 것이다.
그러자 끄르르르 트림을 하며 슬며시 배를 쓰다듬어 보았다.
우글쭈글한 배 가죽이 적이 불루가였다. 그럴수록 슬슬 배를 쓰다듬으며 노인은 아직도 자기가 이만큼 건강하다는 사실에 일종의 희열 같은 걸 느끼는 것이었다.
한 가지 꺼림직한 것이 있었다. 얇은 뱃가죽이 유난히 깔깔한 것이다.
노인은 그제야 자기가 달포 동안이나 역을 안 감았다는 것을 알고 버럭 구역이 치받치려 하였다.
지금은 비록 갈 데 없는 몸이지만 6순이 지난 작년까지도 귓속에 때꼽재기 하나 안기던 노인인 것이었다.
열흘이 멀다고 물을 데워서 멱을 감고 손톱을 잘랐다.
내일쯤은 별 일이 있더라도 역을 좀 감으리라. 이은 날 아침 노인이 밥상을 가지고 온 여인에게 어째 목욕물 한 바가지만 데어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나무가 귀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말씀 드리기가 안 되었지만 몸이 하도 군지로워서 그러니 조금만 데워달라고 하였다.
여인이 생각하는 눈치이자
조금만 디어주시오 하도 급급해서 그려 그시라 나무도 나무지만 여인이 계속 망설이다가 성치않은 몸에 물을 묻히면 덜 좋을 것인디 그여 상처에는 물이 안 가게.
씻으라고 조금만 디어주시오 그렇죠 그럼 누이는 나보다 도리어 몸을 염려해 주는 여인이 고마웠다.
그리고 이날 밤만은 부의 인기척에 신경을 안 쓰고 편히 잘 수가 있었다.
낮에 목욕을 한 데다 방이 따뜻해서였다. 아니면 고루 염려해 주는 여인을 믿는 마음에서인지도 몰랐다.
자고간 딴 신경을 쓰지 않고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밤이 얼마나 깊었을까 노인는 푸득 샘문 긁히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삐드득 삐드득 삐드득 분명 고양이가 아니면 개가 흡이는 발소리일 것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처음부터 이 집에 고양이가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
문을 허이는 발소도 투박스러운 것이다. 저놈은 걔가 오늘 밤에 낸 일일까 그런데 다시 삐드득 삐드득 삐드덕 노이는 개의 문 허비는 소리가 세상 없이 방정맞게 들렸다.
저놈 개 새끼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도로 잠을 청하려 하였으나 개의 문 허비는 소리가 좀체 멋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자기 모른 새 벌떡 일어나 쿵쿵 샘 문을 두들기며 이놈 개 새끼야 자빠지 자거라 순간 개가 허비기를 그만하고 왕왕 달겨들듯 으르렁됐다.
고얀 놈 개 새끼 같으니라고. 그리고 막 누웠던 자리로 돌아오는 때였다.
무에 나무토막 같은 것이 발에 밟혔다고 느끼자 너희는 그만 벌떡 뒤로 나가 둥그러졌다.
쿵 뒤통수가 바람 뼈에 부딪히면서 찡하고 울렸다.
한참 만에 정신이 들었다. 가만히 몸을 일으키고 발치를 더듬어 보았다.
선뜻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민미단 몽둥이 같은 것이었다.
손을 차차 위로 짚어보았다. 밋밋한 몸둥이가 점점 커지더니 문득 머리박이 잡혔다.
순간 노희는 오싹 소름이 끼치는 걸 느끼면서 냉큼 손을 거두고 말았다.
성냥을 그어서 불을 켰다. 여인이 거기에 누워 있는 것이다.
노이는 그제야 들어 알 것 같았다. 개가 문을 허비는 것이며
아침에 지어오던 밥을 저녁에 짓는 까닭도. 그럼 여인도 이제부턴 방에서 자라는가 보군.
노인의 발끝이 여인의 발끝에 뻗쳤다. 그러니까 노인과 정 90도의 각도를 이루고 여인은 머리를 윗목으로 향해 누워 있는 것이다.
빨간 콩기름 불이 쪽빛 이불 위에 미끄럽도록 반들거렸다.
여인의 오른편 머리맡에 물레가 있고 그 옆에 사발 옹베기에는 실 뭉치가 들어 있었다.
여인은 과연 자고 있는 것일까 노인이 이불자락을 턱 아래까지 내리고 가만한 여인을 보았다.
이현을 향하고 누운 여인의 얼굴이 코 위까지 이불에 가려 있었다.
그리고 분명 눈이 감겨 있었다. 하지만 정말 자고 있는 것일까 노인은 이런 생각을 늘 되풀이하다가 훅 입으로 불을 꺼버렸다.
그리고 불과는 반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여인의 감은 눈은 떠질 것이라고 믿었다.
다음 날부터 노인은 여인과 함께 자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저녁 설거지를 하기가 바쁘게 여인이 셋 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개가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여름 하룻밤 사이에 식구를 잃어버린 여인은 문뜩문뜩 간이 벌렁 거리고 아랫도리가 떨렸다.
자기 모르는 새 손을 가져다 아랫배를 쓰다듬어 보았다.
그때마다 깜짝 소스라치면서 여인은 이 아홉살애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곤 하였다.
꼭 죽고만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차마 죽지는 못했다.
도리어 열흘이 지난 뒤에는 논에 나가 김을 매고 피를 뽑았다.
죽은 자식이나 붙들려간 남편에게 참으로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해서 꼭 인역 혼자만 살자는 것 같아. 그러나 그런 미안한 생각 이상으로 논을 매게 하는 것이 있었다.
자기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가 여인은 문득 아들은 무덤으로 달려가 한나절씩 쓰러져서 흐느끼곤 하였다.
그런 가운데서 이래의 구래 여름 한철이 다가가고 소슬한 가을 바람이 여인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하는 때였다.
개가 밤마다 방으로 들어오려고 문을 허비적 거렸다.
7회 동안을 이 집에서 살아온 개였다.
이 집에 온 개는 대개들 제명대로 살았다. 12년, 15년 이렇게 해서 살다가 죽은 것이다.
식구가 단출한 탓도 있지만 외딴 곳에서 사는 것이 노상 외롭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평생토록 개만은 사랑해 온 것이다.
언뜻 하면 한 이불 속에서도 재우고 곧잘 한 자리에서 밥을 먹이기도 하였다.
그대로 한 식구인 거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여인은 식구를 잃은 뒤로는 개를 하룻밤도 방에 들이기 들이지 않았다.
그저 낮이면 별을 훑고 키질을 하는 한편 밤에는 무명을 앓다가 그대로 쓰러져 자고 나 있다.
그러던 그 집엔 밤이면 무명을 가깝고 몸이 피곤해도 졸음이 쉬오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정신만 한결 맑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삐드득 삐드득 문을 허비는 개의 발소리가 한갓 시끄럽게만 들리지 않았다.
벌레 울음소리와 함께 한 읍조를 띄고 애련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한 율조를 띠고 예란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러한 어느 날 밤이었다.
여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걔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개는 방에 들어온 지가 정말 오랜만이라는 듯 천장이며 벽을 르물르물 돌아보다가 예전처럼 등잔 아래로 갔다.
그리고 이내 앞다리에 턱을 괴고 눈을 반나마 가봤다.
개는 허리가 날씬하고 흰 털이 매끈하였다. 게다 몽당한 주둥이 하며 가무스름한 코등이 적이 온순해 보였다.
여인은 어디라 없이 방이 아늑해지는 듯 하였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보다 차차 홍김도 더 했다.
급기야 피로가 탁 풀리면서 온 삭신이 개나른하였다.
그런데도 짜장 졸음은 오지 않았다. 불을 껐다. 개의 숨 쉬는 소리가 간혈프게 들렸다.
문득 자기 아닌 또 한 사람이 방에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든든하였다. 있던 날 새벽 여인은 잠길에 깜짝 몸을 돌이켰다.
개가 바로 자기 옆에 와 누워 있는 것이다. 희귀하였다.
걔 자신이 옆으로 왔는지 자기가 잠기에 걔를 끌어 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깜짝 몸을 돌이킨 여인은 그러나 개를 냉큼 떼밀어내지는 않았다.
잠시 후 손을 뒤로 돌려 가만히 개의 등을 만져 보았다.
자기 체온보다 따뜻했다. 털도 탐스러웠다. 따뜻한 훈김이 손을 타고 차 저 온몸에서 서려 받았다.
여인은 다시 손만 아니라 팔을 온통 갖다 게의 등에 얹어보았다.
좀만에 몸을 개 앞으로 돌이켰다. 개의 배꼽이 마치 자기 배꼽 있는 데 와 닿았다.
여인은 선뜻 하였다. 그런데도 몸을 다시 돌이키지 않았다.
내내 그만큼 가까이 되고 있었다. 그러다 여기는 슬며없이 개를 끌어안았다.
꼭 들어안겼다. 순간 여인은 이상한 충격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개를 갖다 저만치 때밀어버렸다. 개가 때밀린 채 앞다리 하나를 두어 번 허부적이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날 밤부터 개는 방에서 잘 수 있는 운을 얻은 것이다.
여인이 잠을 깰 때마다 개가 옆에 와 있었다. 자연 손이 개한테로 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일 나겠다 마침내 여인은 기를 다시 보고 그런데 저고 혼자 잤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었다. 그 전에 개를 데리고 자기 전보다 훨씬 허전한 것이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훈김도 덜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를 다시 방으로 들일 수도 없었다.
밤마다 남편과 함께 자던 잠자리인 것이다. 노인과 여인은 해저 물기가 바쁘게 문을 걸어 잠갔다.
여인이 등잔을 내려다 심지를 손보고 나서 어디 발 좀 봅시다 노인이 바짓가랑이를 올리고 상처를 끌어 보이자 그새 많이 나기는 나은 것 같소만.
여인은 상처를 똑똑히 들여다 보느라 이마에 잔주름을 지었다.
푸르스름한 상처가 가장 자리만은 이미 딱쟁이가 함을 지면서 가운데는 오히려 빨갛게 피어드는 것 같았다.
차차 살이 차면서 곱이 거치는 탓이리라. 여인은 마저 남은 약을 갖다 바르고 다시 소음을 두툼하게 쌓았다.
그리고 잠시 후 노인이 벗은
핫옷을 뜯기 시작했다. 삼 옷 입은 채 뒹군 노인의 옷은 때가 번벅되어 있었다.
유독 목덜미나 동전 개는 식이로라기마저 까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는 추잡하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도리어 지난날 개의 냄새를 코에서 몰아내고 사람 냄새라도 흠씻 맡으려는 듯이 옷을 뜯어 말고 연에 코로 가져가곤 하였다.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노인이 등을 여인에게로 돌려대며 옷을 갈아입어서 그런지 훅 훅 쑤신 것 같네.
등 좀 긁어주소. 여인은 차차 말을 낮춰서 하는 노인에게 한결 허물없는 애정을 느끼면서 슬슬 등을 긁자 시원하게 좀 뚝뚝 극소 난 손톱이 없어서 그려 그래도 좀 뜩뜩 극소 바로 그 옆에 좀 극소 조금 에 다 다 시원하다.
당신은 늙었어도 나보다 더 등이 통통해요. 나는 다 늙었지 뭘 그래도 아직은 한 10년은 더 살겄어.
그럼 자네 보기 제 누구 보기여 피 그러자 노이는 여인이 며칠 전인가 자기 남편은 인민군한테 붙들려 갔다고 하던 말이 얼핏 생각나
그럼 자네는 혹 남편이 안 죽고 살아오면 어쩔란가 곧 남편이 돌아오면 자기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예의는 아무 말 않고 있으니까 나를 더 생각하소 여인이 한참 만에 그럽시다 그러자 노인은 이 여인이 아무리 물어도 자기 남편 붙들려고 곡절을 말하지 않아 대관절 자네 남편 어쩌다가 그랬던가 여인은 차마 그날 밤의 광경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고 무서운 데다 그 많은 사대들에게 욕을 당한 이야기를 누구한테 할 수 있으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도 자꾸만 이런 곡절을 물으려고 하는 노인이 마땅치 않아 그런데 당신은 몰라 꼭 그런 것을 알라 했었어 자기 운이 나빠서 잡혀갔지 어쩌라고 이렇게 살면서 그런 말 좀 물어보면 모을까 금매 아나 마나 소용없는 말을 뭘라고 물었어아 그럼 당신은 어쩌다가 이런 데까지 쫓겨왔을 뛰어 대잡아 물었다.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나 해주고 남의 이야기를 듣든가 말든가 하시오.
자기의 곡제를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것은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집이 불타 버려서 쫓겨왔노라고 했을 뿐 식구들이 불타 죽은 정상이며 그 꼬투리 같은 것은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자기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빛을 볼 수 없는 죄인인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자꾸만 마음을 억누르고 드는 것이었다.
노인이 이곳으로 달려오던 날 마을은 그때까지도 좌익 노래를 부르며 금명간의 남반부가 완전히 떨어지리라는 선전이 찾아가였다.
바로 그날 라지 같이 나서 했다. 쿵 뒤곁에서 총소리가 울리는 거 하자 연놈들이 인민전선에 나와서 함께 붙어 다녀 어느새 누른 복장을 한 빨치산 두 사람이 살인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곧 경찰에 쫓겨가는 빨치산들이 득세와 여당원의 비행을 알고 숙청을 하려는 것이다.
노인이 냉큼 뒷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기 모으는 새 처마의 낯을 빼 들었다.
그와 그 동시에 겹방에 있던 득수와 여당원도 역시 겹방 뒷문에 뒤틀로 빠져나왔다.
어느새 빨치산이 뒤뜰로 돌아온 것이다. 쿵 여당원이 직통으로 머리를 맞고 자리에서 숨이 졌다.
저런 순간 노인과 득세는 거의 때를 같이 하여 우를 넘어서 뒷산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따다다다 총소리가 그들을 향하여 연급을 올렸다.
그들은 두 주먹을 부르지고 비탈로만 비탈로만 죽음 하나고 내달았다.
겁안 혼드리나가 있었다. 봉우리께까지 다다른 노인이 문득 고개를 돌려 보았다.
어느새 득쇠가 까마득 저편 봉우리를 넘어 동으로 동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허얀 눈발이 그새 득새를 감춰가고 있었다. 노인이 코 득새 쪽으로 방향을 돌려다 말고 빨리 달아나가라이.
그리고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어느새 발치산이 둘러싼 마을에서 연기가 두 군데 자욱이 오르고 있었다.
사이사이 불꽃도 솟구쳤다. 얼핏 본 눈에도 분명 자기 집과 이전 구장질을 하던 오선달레 집이었다.
아이고 들 다 죽네. 노인은 봉우리를 넘어서자 한참 동안 정신을 잃고 눈 위에 나가 쓰러졌다.
허얀 눈소이가 노인의 얼굴 위에서 점점이 녹아갔다.
아이고 다 죽네. 노인이 걷어 부러지며 몸을 일으켰다.
한사코 정신만은 안 잃어야겠다. 안 놓아야겠다.
그리고 다시금 고개를 넘고 또 넘어온 곳이 이 여인의 집인 것이었다.
그런 노이는 그날의 광경을 문득 문득 이렇게 떠올려 보았다.
그날 자기 방에는 분명 할 몸과 새 딸년과 아비 없는 손자 놈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할몸은 깨져져야한 무명 치마에 손자 놈을 앉혀놓고 곁둘이를 먹이고 있고, 셋째 딸은 또 마을의 노래를 배우러 간다고 문 앞에서 머리를 빚고 있고 나머지 두 달려는 샘문현에서 실구리를 감고 있다가 급기야 청소리가 울린 순간 할 몸은 할 몸대로 딸들은 딸들대로 다 같이 놀란 눈을 자기에게 보냈던 것이 아닌가.
어찌해야 좋겠냐는 듯 그 초조하고 다급한 눈동자들을 보내던 찰라 가만히들 있거라
그리고 노인은 재빠르게 뒷문으로 나왔던 것이 아닌가.
아 어찌하여 자기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자기는 나오면서 그대로들 있으라는 말을.
노인은 더욱 그러고 나온 뒤 광경을 그려 보았다. 여당원이 죽고 다시 총소리가 자기 부자를 향해 울리는 찰라 식구들은 총이 방을 향해서 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아들아들 떨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 이젠 죽는가 보다 하고. 그런 순간 빨치산들이 그들을 못 나오게끔 냉큼 물고기를 문고리를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을 것이다. 삽씨의 불이 웬 처마를 돌아 하늘로 내뿜기 시작했다고 하면 방에 있는 식구들은 얼마나 몸부림을 치며 뛰쳐나오려고 발버둥 그렸을까.
얼마나 가쁜 숨을 헐떡이며 가슴을 치워 뜯었을까.
아버지 문 끌어주시오. 몸에 불이 안 붙기 위해서 치마를 홀로 벗으며 고함쳤을 것이다.
여보 새끼들 다 타 죽어. 노이는 여기까지 환상 그러다가 그만 뜨거운 눈물이 주르 뺨을 적시고 나 있다.
눈물 흐린 눈에 이어서 떠오르는 식구들은 다 죽었을 얼굴들 어느 날 개울가에서 거슬려 죽은 개들 모양 흰 이빨을 드러내놓고 다 죽었을 얼굴들 삐드득 삐드득 삐드득 문뜩 개가 문 허비는 소리에 노인과 여인은 침묵을 깨뜨리고 마주 돌아 누었다.
저놈은 개가 또 그런다. 예 좀 뭐라 하시오. 자네가 나무라서 나는 무서워서 그려 당신이 좀 나무라시오.
나도 막 달라들락하네. 자네가 나무라서 삐드득 삐드득 삐드득 어서 좀 나무라는 말이여.
노인이 일어나 새물 들어기면 내 이 빌어먹을 개 새끼 가만히 자빠이 자가라.
왕 왕 왕 보소. 종일토록 부뚜막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있던 기회가 날로 달라져 갔다.
조그마한 소리도 번쩍 귀를 세웠다. 그리고 노인이 바깥에 비치기만 하면 좀것 일어서서 달려들듯이 노려보는 것이다.
그런 기회는 또 여인이 북으로 들어올 때도
눈을 서서히 굴리고 앙큼스럽게 돌아보았다. 이전에는 오히려 죽은 시중을 하고 엎드려 있던 개였다.
그리고 어느 개나가 그러는 것처럼 이 게 역시 밥을 줄 때는 꼬리를 재웠다.
그저 엎드린 채 앞발만 세우고 꼬리를 탁탁 치다가 주둥이를 밥그릇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늙은 개는 열기 대신 그만큼 안락만을 꾀하였다. 그러던 게 요즘에는 밥을 줘도 꼬리를 젖는 대신 눈을 표독스럽게 뜨고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여인이 부엌을 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주둥이를 밥그릇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나은 밤들면서부터 다시 찬 바람과 눈을 몰아왔다.
살아나온 북풍이 처연이 용두리째를 넘어섰는가 하자 민둥산 마루에 와서 급기야 고개를 붓밟고 어지러히 갈려가는 것이다.
지붕을 넘어가는 바람 소리가 욕마을 거둘 것 같았다.
문풍지 우는 소리에도 마음이 떨렸다. 노인과 여인은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도 바람에 곧 떠날릴 것만 같은 것이다.
곡들을 껴안고 고개를 묻었다. 점점 훈김이 오르기 시작했다.
노인이 슬미이 찬 손을 갖다 여인의 등에 꽂았다. 여인도 손을 갖다 노인의 옆구리에 넣었다.
그리고 바깥 찬바람을 몰아내릴 듯 더욱 바트이 않았다.
순간 두 사람은 아무 걱정도 있고 다만 노인은 여인에게서 여인은 노인에게서 우러 나오는 따사로움에 몸이 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힘이라는 걸 아른아른 터득하는 것이었다.
개가 어느새 또 샘 문을 허비기 시작했다. 여인이 곧 이불을 들쑤고 노인의 옆구을 흔들었다.
어서 또 좀 나무라 라는 것이다. 너희이 벌떡 일어나 내 입 빌어먹을 놈 개 새끼 가만히 자빠지 자거라 왕 왕 왕 그리고 다시 삐드득 삐드득 삐드득 삐드득 저놈 개 새끼가 잡빠 잘해도 그리고 노인이 이불 속으로 들어오면 이 저놈 개 새끼 내일 잡아 먹어버리세.
소복도 되고 내 발도 안 빨리 낫겠는가 그라고 저녁마다 저놈 소리 어디 시끄러워서 듣겠는가
여인은 차마 그러자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막상 내쫓으면 조차도 잡아먹을 수야 있으려 하는 것이다.
어이 잡아 먹자 마. 여인은 종네 머리만 파묻고 있으니까 치 자네는 그렇게도 아까운 것이네 그러자 마시.
여인은 갑자기 가슴이 후들거렸다. 개가 죽는 것도 못 볼 일이거니와 노이는 말을 잡아떼기도 다 했다.
그래 잠시 후 떨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주저앉히면서 당신 알아서 하시오.
노인은 그럼 됐다 하였다. 내일 당장 목을 매서 죽이리라.
그리하여 그동안 굶주린 배도 좀 채우고 살도 찌우리라.
그러나 노인은 단순한 영양 보충을 위한 이상의 쾌감이 마음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밤 따라 개가 이상스럽게도 사뭇 오래까지 으르렁거리며 문을 사겨 봤다.
그 바람에 셋문 찍기는 소리가 자르르 하고 들렸다.
너희 또 벌떡 일어나 내일 이 빌어먹을 개 새끼 내 일은 돼지를 탱게 가만히 있거라.
문을 쿵쿵쿵 두드리고 마른 걸레로 찬구멍을 먹었다.
달겨 들듯 울부짓는 소리가 자못 도끼에 차 있다. 여인은 십상 저 개가 저를 잡겠다고 한 말을 알아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였다.
그러자 금세 문을 박차고 들어올 것만 같아 더욱 가슴이 후들거렸다.
다시금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붙으며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노인만은 은근한 희망이 가슴 속 가득이 넘치고 있었다.
이튿 양기가 오를쯤에 해서 노인이 과연 개를 잡을 참으로 식칼부터 갈았다.
월감이도 마련했다. 그리고는 개에게 한 사고 다 눈치를 보여서는 안 되니 하고 어이 거구 개 밥 그릇어 밥 좀 푸고 개를 이리 데리고 나오서 어이 여인이 부을 두리번거리며 오매 계가 없구만이라.
순간 노인과 여인의 이상한 직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여인는 십성 개가 어젯밤에 저를 잡겠다고 하던 말을 알아듣고 그새 어디로 달아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오 노인은 혹 여인이 개를 못 잡게 쫓아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었다.
아내까지 잘 좀 보소 아내도 없구만 이라.
노이는 몸소 부엌으로 가서 해서 광이며 사랑채의 디틀까지 돌아가 보았다.
과연 개가 없었다. 그러자 더욱 여인을 의심하면서 대문 밖까지 찾아보았다.
그래도 개는 없는 것이다. 여인 역시 걱정스럽다.
노인이 개를 잡고 안 잡고는 고소하고 7회 동안이나 길러온 기회를 어쩌나 하는 것이다.
더욱 노인이 오기 전에는 밤마다 체온을 함께 나눠 온 기회가 아닌가 그리고 어 저녁에는 차마 노인의 다짐에 못 이겨서 알아서 하라고 했지만 그리고 여인 역시 날로 험하게 지는 기가 무섭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막상 달아났는가 하고 생각하니 급기야 눈시울이 슴벅거려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왕 죽을 바에 어디로든가 달아난 것이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노인이 밖에서 들어오면 아 저놈은 기가 저기 있네 아산을 가리키며 놀이게한 눈동자에 웃음을 띄고 일명 감격이 였다.
여인이 번쩍 퀴가 뛰었다. 압사를 보았다. 과연 개가 압수한 등성이에 쭈그리고 앉아 이쪽을 건너다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오미
속으로 반가왔다. 그러나 되도록 반가운 기색을 안 나타내려 하며 대체 거가 있소이 아따 그놈은 걔 새끼 눈치가 날쌉네이.
저런 것도 다 제 목숨은 귀한 줄 아는 것 아니여 개가 집에서 저를 도와준 게 용한 듯 이내 고개를 숙이고 딱 냄새를 맡더니 한 다음으로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집을 돌아보았는가 하자 이내 고개 너머로 사라진 것이다.
제 놈이 배고프면 아무 때라도 오겠지. 그러나 걔는 밤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들어오지 않았다.